
한미반도체는 인공지능(AI) 반도체 투자가 몰리는 2027년부터 장비 공급 부족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생산능력을 미리 확보한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실제 고대역폭메모리(HBM) 장비 발주가 회사 예상만큼 늘어 새로 확보한 생산능력을 채울 수 있느냐다.
1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가 지난 7월20일 공시한 ‘2026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는 매출 2조원 목표가 담기지 않았다. 8공장 매입과 7공장 가동, 미국 법인 설립, 차세대 장비 출시 일정은 구체적으로 제시했지만 이 투자로 언제 얼마를 벌겠다는 숫자는 빠졌다.
앞서 한미반도체는 2024년 7월 HBM 시장 성장을 근거로 2024년 매출 6500억원, 2025년 1조2000억원, 2026년 2조원이라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실적은 따라가지 못했다. 2024년 매출은 5589억원으로 목표에 900억원 넘게 못 미쳤다. 지난해에는 5767억원으로 목표의 48%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 누적 매출은 3021억원이다.
한 분기 만에 5배… 실적 변동폭 컸던 탓
한미반도체가 매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배경에는 큰 실적 변동성도 자리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고객사의 세대 전환에 따른 발주 공백으로 전년 동기보다 65.5% 급감한 509억원, 영업이익은 85억원에 그쳤다. HBM3E 투자가 마무리되는 가운데 HBM4용 신규 장비 발주가 본격화하기 전인 세대 전환기와 맞물린 영향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2분기에는 차세대 HBM 장비 수주가 본격화하며 매출 2511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영업이익은 1303억원, 영업이익률은 51.9%로 분기 기준 처음 50%를 넘겼다. 한 분기 만에 매출이 5배 가까이 뛴 것이다.
이는 장비 사업의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비 매출은 고객사에 물건을 넘기고 검수를 통과한 시점에 한꺼번에 잡힌다. 고객사가 라인 증설 일정을 한 달 미루면 매출은 통째로 다음 분기로 넘어간다. 상반기 부진도 HBM3E 투자가 마무리되고 HBM4 발주는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전환기와 겹친 결과다.
실제로 지난 6월 SK하이닉스와 442억원 규모 HBM4용 TC본더 공급계약을 맺자 2분기 실적이 곧바로 튀어 올랐다. 계약금액은 지난해 연간 매출의 7.66%에 해당한다.
주목할 점은 이처럼 널뛰는 실적 흐름 속에서도 설비 투자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한미반도체는 인천 주안에 약 1000억원을 투입해 7공장을 짓고 있다. 2027년 상반기 완공이 목표다. 가동에 들어가면 전체 생산시설 면적은 8만9530㎡로 늘어난다. 여기에 인근 5000평(약 1만6529㎡) 이상 규모의 8공장 부지 매입까지 추진 중이다. 성사되면 1980년 창사 이래 가장 큰 생산기지가 된다.
7공장은 차세대 기술인 ‘하이브리드 본더’ 전용 생산기지로 꾸려진다. 기존 TC본더가 칩과 칩 사이에 미세한 돌기(범프)를 넣어 붙였다면, 하이브리드 본더는 돌기 없이 칩을 곧바로 접합한다. 칩 사이 간격이 대폭 줄어 데이터 전송 속도는 빨라지고 발열은 감소한다. 적층 단수가 늘어나는 16단 이상 초고성능 HBM을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술로 꼽힌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말 2세대 시제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대규모 시설 투자의 배경에는 ‘2027년 AI 반도체 장비 공급 부족(쇼티지)’ 전망이 자리한다. 글로벌 메모리 기업들이 HBM 생산을 대폭 늘리고 파운드리·후공정 업체의 AI 패키징 투자까지 겹치면 장비가 없어 못 파는 상황이 온다는 계산이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부터 반도체 장비가 필요한 만큼 공급되지 못하는 쇼티지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신규 생산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 산업은 주문을 받은 뒤 공장을 지으면 이미 때를 놓친다”며 “고객사가 요구하는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주도권을 빼앗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거점 확보도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법인 ‘HANMI USA’ 설립을 결정했다. 출자금은 150만달러(약 21억원)로 지분 전량을 보유한다. 마이크론과 인텔, 앰코테크놀로지 등 현지 생산기지 가동 일정에 맞춰 영업과 기술 지원을 맡는다.
문제는 투자를 판단할 기준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한미반도체의 올해 매출을 8196억원, 영업이익을 3822억원으로 전망했다. 사상 최대 실적이지만 회사가 2년 전 제시한 2조원의 41% 수준이다. 증권가가 보는 하반기 매출도 5200억원 안팎으로, 2조원 달성에 필요한 1조7000억원의 3분의 1에 못 미친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미반도체의 행보는 장기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높이려는 전략적인 선택일 것”이라며 “결국 7·8공장 증설의 성패는 예상대로 2027년 장비 대란이 현실화해 대규모 주문으로 공장을 채울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